
진도 남도진성
珍島 南桃鎭城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149번지
단체로 갈 때
- 버스 주차 미확인
- 도시락 미확인
- 우천 운영 미확인
- 수용 인원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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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학년
- 초3 ~ 고3 (자동 추천)
- 시대
- 조선시대 (조선)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지역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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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고려 원종(재위 1259∼1274), 삼별초가 진도에서 몽골과 항쟁을 벌일 때 해안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갈 때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백제 때 진도에는 3개의 마을이 있었고 그 중 한 마을의 중심지가 이곳으로 여겨지는데,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는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13세기부터는 왜구가 나타나서 노략질을 계속해 오자, 고려 충정왕 2년(1350)에 진도의 관청과 백성들이 내륙지방으로 피해서 살다가 세종대왕 초에 돌아오기도 했다. 결국 세종 20년(1438) 해안지방에 주로 설치되던 군사조직인 만호부가 이 지역에 생기게 되고 왜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았는데, 지금 남아있는 성은 그 이후에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동·서·남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 있으며, 둘레가 400여m 정도이지만, 해안지방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위치임을 보여주고 있는 유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남도석성 → 진도 남도진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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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Open API (공공누리, 유형 확인 필요) · 가져온 날: 2026.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