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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원장군묘및신도비

李大源將君墓및神道碑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 산 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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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학년
초3 ~ 고3 (자동 추천)
시대
정보 없음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지역
경기도 평택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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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조선 중기의 무신 이대원(李大源, 1556∼1587) 장군의 묘이다. 1587년(선조 20)에 남해안에 출몰한 왜구를 토벌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왜구가 다시 흥양에 침입하자 출병하여 손죽도 해상에서 적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묘역은 그의 부인인 경주 김씨(慶州金氏)·용인 이씨(龍仁李氏)와 함께 매장된 삼분(三墳 ; 봉분이 3개인 무덤)의 형태이다. 그 중 장군의 봉분은 중앙에 있는데,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옷으로 대신하였다고 전한다. 묘표(墓表;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는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이며, 후대에 세워진 것이다. 묘역 입구에는 1699년(숙종 25)에 건립한 신도비(神道碑 ;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석)를 세웠다. 비문은 남구만이 짓고 조상우가 글씨를 썼으며, 전액(篆額; 비석의 이름을 전서체로 새긴 부분)은 김진규가 쓴 것이다. 신도비는 보편적인 옥개방부형(屋蓋方趺形; 지붕모양의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의 모습이지만, 규모가 장대하고 이색적인 문양의 받침돌이 독특하다. 이 묘역은 17세기 석물의 예술성 및 경기 지역 능묘 문화의 특성을 보이는 가치 높은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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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Open API (공공누리, 유형 확인 필요) · 가져온 날: 2026.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