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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흠묘역및신도비

申欽墓域및神道碑

경기 광주시 퇴촌면 영동리 산12-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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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학년
초3 ~ 고3 (자동 추천)
시대
정보 없음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지역
경기도 광주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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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조선 선조~인조 연간의 문신이자 한문학의 대가로 칭송되었던 신흠(申欽, 1566∼1628) 선생의 묘이다. 신흠 선생은 장중하고 간결한 성품과 뛰어난 문장으로 선조의 신임을 받았고, 특히 외교문서의 제작과 각종 의례문서의 제작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묘역은 부인 전의 이씨(全義李氏)와 합장한 단분(單墳 ; 하나의 봉분)의 형태이다. 묘제(墓制)는 비교적 원형이 유지되고 있으며, 석물은 대부분 옛 석물이다. 봉분 앞에는 묘표·혼유석·상석·향로석을 차례로 조성하였다. 묘표(墓表 ;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는 1628년(인조 6)에 건립한 것으로, 뒷면의 내용은 한문학의 대가답게 신흠이 손수 작성한 것이다. 일반적인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 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이나 몸돌의 대리석이 아름다운 문양을 이루고 있다. 하단에는 장명등과 망주석·문석인 각 1쌍을 조성하였다. 장명등은 화창(火窓)이 작고 문양이 거의 없다. 망주석은 머리부분의 운각(雲刻)과 염우(廉隅)문양의 장식이 정갈하다. 몸돌에는 변형된 귀(耳) 장식을 조각하였는데 과도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문석인은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 ;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으로 신체표현은 평면적이지만 안면묘사는 세밀한 17세기 전기의 양식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묘역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 ;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석)를 세웠는데, 웅장한 이수귀부형(螭首龜趺形 : 용문양을 장식한 머릿돌과 거북모양 받침돌의 비석 형태)이다. 1699년(숙종 25)에 건립된 것이고, 매우 거대하면서 구조가 안정적이다. 머릿돌의 용조각은 자유로운 높낮이와 뛰어난 세부묘사를 구현한 우수한 작품이다. 이 묘역은 경기 지역에 발달한 조선 묘제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가치 높은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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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Open API (공공누리, 유형 확인 필요) · 가져온 날: 2026.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