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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성

處仁城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아곡리 산 43

단체로 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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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학년
초3 ~ 고3 (자동 추천)
시대
고려시대 (고려)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지역
경기도 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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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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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용인시 남사읍 아곡리에 있다. 형제봉에서 동쪽으로 능선이 이어지며 돌출된 해발 70.9m의 자연 구릉이다. 용인에서 진위로 가는 길목이자 수원-오산-안성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에 해당한다. 처인성의 평면 형태는 사다리꼴이며 전체 둘레는 351m다. 작은 규모지만 성 내부가 평탄하여 공간효율성은 좋은 편이다. 성벽은 남서쪽이 높고 북동쪽이 낮은 형태다. 성문은 개거식(開据式)이었으며 북동 성벽에 2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낮은 지점은 판축공법으로 성토하는 방법으로 구축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기둥을 깊게 박고 목수와 목주 사이에 판목을 설치하고 성질이 다른 흙을 다짐하여 성벽을 조성했다. 그러나 처인성에서는 통일신라 이후의 판축토성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기단석열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기와류와 토기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자기류, 대도와 화살촉등이 출토되었다. 축성법이나 출토유물을 고려하면 처인성은 신라말-고려 초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인성은 몽고군의 2차 침입시 승전지로 잘 알려져 있다. 1232년(고려 고종 19)에 처인성을 공격한 몽고군을 승장 김윤후장군이 활을 쏘아 살례탑을 죽이고 승리한 내용이 『고려사(高麗史)』와 『원사(元史)』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처인성의 원래 명칭은 ‘처인부곡성(處仁部曲城)’이었다. 부곡은 군이나 현을 설치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지역에 설치했던 행정관서였다. 처인성은 부곡(部曲)에도 치소성이 있었음을 입증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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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Open API (공공누리, 유형 확인 필요) · 가져온 날: 2026.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