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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김덕숭 효자각

鎭川 金德崇 孝子閣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1224-5

단체로 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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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천 운영 미확인
  • 수용 인원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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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학년
초3 ~ 고3 (자동 추천)
시대
정보 없음
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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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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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조선 세종대의 효자 김덕숭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633년(인조 11)에 세운 정려문이다. 규모는 정면 1칸,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사면을 홍전(紅箭)으로 막고, 처마 밑 중앙에는 서하(墅河) 임헌회(任憲晦)가 짓고 전우(田愚)가 쓴 정려기를 달았다. 건물 내부에는 현판 외에 효자비가 자리하고 있다. 김덕숭은 한산군수(漢山郡守)의 직(職)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봉양에 온 힘을 기울였으며, 아버지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여 여계소(女溪沼)에 앉아서 어름을 녹이니 잉어가 튀어나오고,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손가락을 펴서 들고 들에 서 있으면 꿩이 날아와 앉았다고 한다. 이러한 부모봉양에 헌신한 효행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기록되어 있다. 김덕숭은 세종이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초정약수에 들렀을 때, 그의 효행을 듣고 충청감사를 통해 백미(白米) 10석 등을 내렸고, 이에 김덕숭이 세종을 찾아 인사를 드렸는데, 세종은 누가 아버지이고 누가 아들인지 몰라보았다고 한다. 1448년(세종 30) 그가 운명하자 세종은 이조참의에 증직하고 어제시(御製詩) 2수를 내리면서 정려를 건립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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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Open API (공공누리, 유형 확인 필요) · 가져온 날: 2026.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