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남장군묘
李德南將軍墓
경기 안성시 미양면 구수리 8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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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학년
- 초3 ~ 고3 (자동 추천)
- 시대
- 정보 없음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 지역
- 경기도 안성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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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이덕남(李德南, ?~1592) 장군의 묘이다. 이덕남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인 안성에서 외삼촌 홍자수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북진하는 왜적을 수차례 격퇴하였다. 그 뒤 용인·죽산·양지에 진을 구축하는 동시에 서운산성에 토성을 쌓아 경기·충청 지방의 의병들과 합세하여 왜적을 무찌르다 전사하였다. 1718년(숙종 44)에는 묘소에서 1㎞ 떨어진 장군의 생가에 정문(旌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고자 그 집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이 세워지고 병조참의의 벼슬이 내려졌다. 묘역은 부인과 함께 매장된 쌍분(雙墳 ; 두개의 봉분)의 형태이다. 원래 묘표(墓表 ;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 이외의 석물은 모두 없었으나, 1975년에 묘표·상석·향로석·장명등·무석인·망주석 등 새로운 석물들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옛 묘표는 묘역 입구 정문(旌門) 앞으로 옮겨졌다. 옛 묘표는 옥개방부형(屋蓋方趺形 : 지붕모양의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으로 작고 소박한 모습이다. 머릿돌의 용마루와 내림마루가 두껍게 돌출되었으며, 받침돌이 유난히 작아 다소 불안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묘표의 글은 윤봉구가 짓고, 홍봉조가 쓴 것으로 18세기의 시대성을 보인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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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Open API (공공누리, 유형 확인 필요) · 가져온 날: 2026.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