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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복선생묘

李恒福先生墓

경기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 산4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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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학년
초3 ~ 고3 (자동 추천)
시대
광해군 10년(1618)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지역
경기도 포천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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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조선 중기의 정승인 이항복(李恒福, 1556∼1618) 선생의 묘이다. 이항복은 이조참판·병조판서·우의정·영의정 등의 벼슬을 하였다. 묘역은 부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와 함께 두개의 봉분으로 조성하였다. 묘제(墓制)는 원형이 보존되어 있고 옛 석물이 잘 남아있다. 두 봉분 사이에는 묘표(墓表; 무덤 주인공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를 세웠는데,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둥근 머릿돌과 네모난 받침돌의 비석 형태)이다. 몸돌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17세기의 단정한 양식을 보인다. 묘역 하단에는 망주석과 문석인을 세웠다. 망주석은 몸돌이 두꺼워 안정적이며, 가운데에 귀(耳; 몸돌부분에 조각된 손잡이 형태의 조형) 장식을 새겨 시대성이 명확하다. 문석인은 양관조복형(梁冠朝服形; 머리에는 양관을 쓰고, 조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인데, 평면적인 17세기 초반의 양식을 보인다. 묘역 입구에는 1652년(효종 3)에 제작한 신도비(神道碑;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석)를 세웠다. 신도비는 옥개방부형(屋蓋方趺形; 지붕모양의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의 모습인데, 크기가 장대하여 당당한 모습이고, 단정한 처마 뻗침과 화려한 장식의 받침돌이 조화롭다. 이 묘역은 17세기 묘제 석물의 예술성을 유지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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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Open API (공공누리, 유형 확인 필요) · 가져온 날: 2026.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