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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쌍충사

高興雙忠祠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도양읍 목넘가는길 34 (봉암리)

단체로 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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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락 미확인
  • 우천 운영 미확인
  • 수용 인원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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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학년
초3 ~ 고3 (자동 추천)
시대
정보 없음
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지역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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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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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고흥 쌍충사(雙忠祠)는 조선시대 이대원(李大源, 1553∼1587)과 정운(鄭運, 1543∼1592)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우(祠宇)이다. 숙종 시기인 1683년(숙종 9) ‘쌍충(雙忠)’이라는 액호를 받았으며, 고흥 지역에서 유일하게 사액(賜額)을 받은 사우이다. 1587년(선조 20) 1월 손죽도(損竹島)에 왜구의 침입이 있었다. 녹도만호 이대원은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1587년 손죽도해전 후 조정은 녹도진 수군들의 요청에 따라 전라감사 윤두수의 주관으로 녹도만호 이대원을 모신 녹도사라는 사당을 세워 매년 기일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임진왜란 시기 1592년(선조 25) 9월 녹도만호 정운은 부산포해전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절하였다. 1592년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요청에 따라 부산포해전에서 순절한 녹도만호 정운도 함께 모셨다. 흥양 유림들은 1682년(숙종 8)에 도내 유림의 협조를 받아 녹도사를 크게 중건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서봉령 등 호남 유림이 연명하고 신명규가 글을 지어 조정에 사액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려 1683년(숙종 9) ‘쌍충(雙忠)’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22년 고흥향교 유림에서 다시 지었으나 1942년 일본인들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 1947년 이대원의 순국 6주갑을 기념하여 김근종(金根鍾)을 주축으로 한 ‘녹도쌍충사복구기성회’가 조직되어 1957년 신실과 강당을 다시 개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년 4월 30일에는 (사)녹도진 쌍충사 모충회 주관으로 쌍충사에서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의 선봉이었던 녹도만호 이대원과 충장공 정운 장군을 추모하는 쌍충제전이 열리고 있다. 쌍충사의 건물 배치는 맨 위쪽에 사당을 배치하고 이 구역과 약 2.5m의 지반차를 두고 형성된 아랫단의 좌측으로 동향하여 강당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대지 우측 끝으로는 강당과 마주 보게 관리사를 건립하였다. 본 사당은 정면 3칸·측면 1칸 반으로 꾸민 조그마한 규모의 사당이다. 강당은 정면 5칸·측면 3칸 규모의 비교적 큰 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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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Open API (공공누리, 유형 확인 필요) · 가져온 날: 2026.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