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풍납동 토성
서울 風納洞 土城
서울 송파구 풍납1동 72-1번지 외
단체로 갈 때
- 버스 주차 미확인
- 도시락 미확인
- 우천 운영 미확인
- 수용 인원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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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학년
- 초3 ~ 고3 (자동 추천)
- 시대
- 삼국시대 (삼국·가야)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지역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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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백제시대 초기(한성백제기) 한강변에 흙으로 쌓은 평지성으로 풍납토성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둘레가 3.5㎞에 달하는 큰 규모의 토성이었으나, 한강과 맞닿은 서쪽 성벽이 유실되어 지금은 2.1km정도만 남아있다. 발굴조사에 의해 성벽 기초부는 너비가 43m, 높이가 11m가 넘는 대규모의 토성으로 확인되었다. 성벽의 축조는 중심부 하단에 뻘흙을 깔아 기초를 다진 후 그 안팎으로 진흙과 모래흙을 다진 판축기법으로 중심 토루(土壘)를 쌓아가며, 일부에 식물유기체를 깔거나 자갈을 이용하여 토루를 보강하는 등 독특한 축성기술을 동원하였다. 1925년(을측년) 대홍수 시 중국제 청동자루솥, 허리띠장식 등 상류층이 사용한 중요 유물이 다량 출토되면서 주목받아왔다. 1936년에 조선고적(제27호)으로 지정된 바 있으며, 1963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도 경당지구 발굴조사를 거치며 한성백제시대 첫 도읍인 하남위례성일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발굴조사가 지속되며 풍납토성이 백제의 최초 도성이었음은 학계의 정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토성 내부 발굴조사에서 중요 유구들과 수만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 상수도로 추정되는 토관, 백제 초기 최초의 동서남북대로 유구, 대형 주거지, 백제 최초의 지상식 기와 건물지, 신전 추정 초대형 건물지, ‘大夫’, ‘井’자 등이 생겨진 항아리 등 한성백제기 최고 상류층 사용 주요시설이 확인되어,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의 역사정체성을 규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서 지금까지 발견된 백제시대 최고의 왕성유적이다. ※ ‘광주풍납리토성’은 ‘서울 풍납동 토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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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Open API (공공누리, 유형 확인 필요) · 가져온 날: 2026.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