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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방산동 청자와 백자 요지

始興 芳山洞 靑瓷와 白磁 窯址

경기 시흥시 방산동 370-1번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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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학년
초3 ~ 고3 (자동 추천)
시대
통일신라말기~고려초기 (통일신라·발해)
분류
유적건조물 > 산업생산 > 요업 > 도자기가마
지역
경기도 시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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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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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요지(窯址)는 도자기와 기와 등을 굽던 가마터이다. 방산동 요지는 1997·1998년 2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9~10세기경 청자와 백자를 생산한 벽돌가마터를 확인하였고, 2002년 조사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도기를 구운 굴형태의 가마터를 추가로 확인하였다(모형전시각). 남아있는 벽돌가마의 길이는 35.8m이며 아궁이, 굴뚝, 옆면 출입시설 7곳 등이 조사되었다. 특히 벽돌을 쌓아 만드는 방식은 중국 월주지방 요지에서 흔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유물로는 한반도 초기의 청자와 백자로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해무리굽 청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방산동 요지는 북한의 봉산군 원산리요지, 사적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의 가마터와 시기적으로 비슷한데, 규모가 크고 잔존상태가 훨씬 양호하다. 벽돌 가마터의 남쪽 10m 지점에는 통일신라시기의 도기가마터도 발견되었다. 즉 청자나 백자를 만들기 전의 도기를 생산한 굴가마와 비슷한 시기에 운영되었는데, 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인 도기질 요업체계가 선진기술을 받아들여 청자, 백자로 전환되는 시점을 확인해 주는 사례이다. 통일신라 이후 연속적으로 생산되고 있었던 방산동 가마터는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 시흥시 일대를 세력하에 두었던 호족이나 세력가에 의해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br/><b>※(시흥방산동청자·백자요지 → 시흥 방산동 청자와 백자 요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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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Open API (공공누리, 유형 확인 필요) · 가져온 날: 2026.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