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마산리 요지
전남광주특별시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산 33-1 영암 마산리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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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3 ~ 고3 (자동 추천)
- 시대
- 영암 마산리 요지는 사적인 영암 구림리 요지보다 이전에 운영된 생산유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전라남도 일대에서 도기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과정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줌. (통일신라·발해)
- 분류
- 유적건조물 > 산업생산 > 요업 > 토기가마
- 지역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소개
영암 마산리 요지는 2021년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세 차례 발굴조사 끝에 10기의 가마와 폐기장 등 관련 유구와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물은 뚜껑과 굽이 달린 그릇, 병, 벼루 등으로 통일신라시대 토기의 특징인 인화문이 새겨져 있다. 인화문의 종류로는 원문류, 엽문류(나뭇잎 모양), 점열문(점을 이어서 찍은 모양), 파상선각문(파도모양의 곡선) 등이 확인된다. 영암 지역에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도기 유입된 시기는 백제 멸망(660년) 이후로 추정된다. 신라는 삼국 통일 후 원활한 지방통치를 위해 신문왕 5년(686)에 9주 5소경 체제를 정비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또한 월출산을 국가 산천 제사인 ‘소사(小祀)’를 지내던 영산으로 관리하였다. 영암 마산리 요지의 도기 생산 시기는 신라의 지방 통치 체제의 정비시기와 거의 맞물려 있다. 마한 백제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신라에 편입됨과 동시에 그 양식의 토기가 대규모로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중앙(경주)과 긴밀한 교류가 이뤄졌다는 점을 증명하고 나아가 행정적 통합 과정에서 우리 지역의 역할과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준다. 한편 영암 마산리 요지는 3~6세기와 9~10세기 사이 도기 생산사의 공백을 메운 7~8세기의 도기 유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우리 지역에서 백제가 멸망 이후 도기 가마터는 사적인 영암 구림리 요지가 유일하여, 이 지역에서 생활용기와 옹관을 제작하던 장인들의 활동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영암 구림리 요지보다 이른 시기의 영암 마산리 요지가 발견되면서 대규모 생산 집단과 전문 장인의 맥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이는 우리 지역 도기 생산 역사의 흐름을 재정립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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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검색 Open API (공공누리, 유형 확인 필요) · 가져온 날: 2026. 10. 25.